현재 글로벌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모든 시선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쏠려있지만, 2019년 가장 주목을 받는 중앙은행장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될지도 모른다.

 

2018년 일본 경제는 구로다 총재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BOJ는 역사상 가장 공격적이었던 통화완화 정책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한 해를 시작했다. BOJ는 2013년 4월부터 모든 국채 발행잔액과 상장지수펀드(ETF)의 50%와 75% 이상을 매입하는 등 정책당국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금융자산에 대한 매입에 착수했다.

 

대외적으로 혼란스러운 경제 여건은 구로다 총재의 계산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무역전쟁은 BOJ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2% 인플레이션 달성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일본 기업들의 임금 인상 속도도 더디기만 했다.

 

2018년 말 현재, BOJ의 대차대조표(순자산)는 일본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서는 4.9조 달러에 이르렀다. BOJ가 애플과 도요타 자동차 시가총액의 각각 5배와 25배가 넘는 자산을 매입하고 있지만 구로다 총재가 바꿔놓겠다고 약속했던 ‘디플레이션 심리’는 지속됐다.

 

2019년에 구로다 총재는 추가 부양정책을 써야 할지, 아니면 부양 규모를 점차 축소하는 일명 ‘테이퍼링’(tapering)에 착수할지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 여부에 따라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는 분명 BOJ가 전자의 선택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일본 경제는 3분기 마이너스 2.5% 성장에 그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키고 있는 경제적 역풍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줬다. BOJ가 자산매입을 축소하려고 했다가는 자칫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7년 만에 연간으로 하락 마감한 닛케이 지수의 추가 타격은 불가피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하기 이전에도 이미 BOJ의 양적완화 정책은 제한적인 효과만 거두고 있었다. 2012년 12월 아베 총리 취임 이후 통상임금은 제자리걸음을 계속했다. 그러자 근로자들의 소득 증가로 지출이 늘어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는 선순환을 일으키겠다는 아베 총리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구로다 총재 입장에선 출구전략을 쓸 여지가 좁아졌다.

 

BOJ는 덫에 걸렸나?

 BOJ가 정책적 덫에 걸렸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충분하다. BOJ가 수많은 자산군으로 매입 범위를 대폭 확대해놓은 이상 정책 정상화에 나설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시장은 공포에 휩싸일 수 있다. BOJ가 겪는 딜레마는 6년째를 맞는 아베노믹스의 현 상황이 녹록하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아베 총리는 2013년 6월 일본 경제 재건을 목적으로 수립된 ‘일본재흥전략’(日本再興戦略)을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광고하고 다녔지만 2018년 이 전략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무역전쟁으로 인해 일본 경제가 겪은 혼란이 그렇다는 걸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다. 아베 총리가 말로만 떠들지 말고, 일본 경제의 구조조정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신규 부양책이 필요하다거나 ‘콘크리트 경제학’(concrete economics)이 부활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2019년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베 총리의 멘토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자신이 15년 전 총리 재임 시절 경기 부양을 위한 마구잡이식 건설 투자를 중단시켰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그런 생각은 틀렸을 수도 있다.

 

최근 일어난 닛산 회장 구속 사태는 일본 기업들이 겪고 싶지 않을 치욕이다.

 

닛산에겐 기적이 필요하다

 카를로스 곤 회장이 소득 축소 혐의로 도쿄 구치소에 수감된 11월 중순에만 해도 르노-닛산-미쓰비시 3자 연합을 살리는 게 가능해보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현재로서는 전 세계적 주목을 받는 이 3자 연합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하다. 르노-닛산-미쓰비시 3사의 회장직을 모두 겸임해왔던 곤 회장은 일본 검찰에 체포된 직후 닛산과 미쓰비시 회장직에서 해임됐다.

 

3자 연합이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상태에서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2018년 일본 경제가 거둔 끔찍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자인해야 한다. 일본 증시는 폭락했고, 경제 성장세는 둔화됐으며, BOJ의 2%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금 상승세는 더디고, 기업의 불법 행위는 만연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던 곤 회장 구속 이후 일본의 국가 브랜드 가치는 훼손됐다. 하지만 모든 방법이 동원됐다고 여겨지는 2018년 아베노믹스의 미진한 성과도 역시 브랜드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2년 12월, 아베 총리는 공급 측면의 ‘빅뱅’을 약속하며 취임했다. 그가 내세운 3개년 계획에는 공격적 통화완화, 재정 지출, 구조조정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앞의 두 정책은 1980년대 이후 최장 기간의 경기 확장세를 일으키면서 괜찮은 효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정책인 구조조정 추진에 아베 총리가 미온적 태도를 보이면서 고통스러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기저기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닛산은 마쓰다, 스바루, 스즈키, 야마하 등과 함께 배출가스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고 회장의 구속은 투자자들에게 아베 총리가 기업의 사업 관행을 대폭 개선했다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실제로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줬다.

 

기업 스캔들과 정치권의 무능력

 

닛산 사태는 또한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시대를 역행하는 일본의 정치가 일본 경제 회복을 얼마나 방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2018년은 일본 정치권이 얼마나 심각한 ‘기능장애’를 겪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일본 기업들을 둘러싼 스캔들이 도처에서 등장하면서 일본의 국가 브랜드가 훼손됐지만 투표를 통해 선출된 관리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고베제강의 품질조작에서부터 도시바의 회계부정과 다카다의 에어백 결함과 올림푸스의 회계부정에 이르기까지 2018년에는 ‘낡은 일본’(Old Japan)이 아베 총리가 그리는 ‘새로운 일본’(New Japan)에 대한 꿈을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들이 등장했다. 일본 국회의원들은 닛산 등 범법 행위를 저지른 기업들에게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중국이 2025년을 바라보고 투자하고 있지만, 일본의 지도자들은 지금이 여전히 1985년인 것처럼 행동했다.

 

또한 아베 총리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부과 불똥이 일본으로 튀면서 일본 경제가 혼란에 빠진 것. 일본 경제가 3분기 거둔 마이너스 2.5% 성장은 2019년 일본 경제에 일어날 일들을 알리는 불길한 징조일 수 있다. 일본의 수출 성장세는 둔화됐고, 고정자산 투자와 소매판매, 인플레이션은 모두 하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자민당이 혁신을 장려하고, 스타트업들에 활력을 불어넣고, 관료주의를 줄이고, 여성들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주고, 기업 임원들의 책임감을 강화하기 위해 더 신속하게 움직였다면 일본은 지금처럼 또 다른 침체 위기 직전으로 몰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아베 총리는 경제 재정비보다 줄곧 헌법 개정 시도를 추진해왔다. 1947년 5월 3일 시행된 일본 평화헌법은 전쟁 포기, 국가 교전권 불인정 등을 9조에 규정한다. 아베 총리는 헌법을 고쳐서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베 총리와 그가 이끄는 자민당이 여기저기서 여러 가지 성과를 올린 것도 사실이다.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고, 미국의 탈퇴 이후에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남았다. 또한 외국인 인재 영입을 위한 중대한 조치를 실시했다. 일본 정부는 2019년 4월 새로운 외국인 인재수용제도가 시작되는 것에 발맞추어 입국관리국에 가칭 ‘입국재류관리청’(入国在留管理庁)을 신설하기로 했다.

 

아베 총리는 연초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동남아시아 지역 순방에 자주 나서며 외교 관계 강화에 힘썼다. 하지만 영유권 분쟁 지역인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일본 귀속 문제와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진 협상은 결렬됐다.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기업들이 배상하라고 판결한 뒤 한일 관계는 급격히 냉각됐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가장 큰 두통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베팅’이었다. 어떤 세계 정상도 트럼프 대통령과 친해지기 위해 아베 총리만큼 많은 정치적으로 공을 들인 사람은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에서부터 북한과 기후변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해결에 최우선순위를 둔 문제들에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무역전쟁은 구로다 총재의 통화정책 정상화 바람을 꺾어놓았다. BOJ의 자산조합 변화 우려는 연초 엔화 가치와 국채 수익률 급락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일본 정부가 새로운 재정부양책을 쓰고 BOJ가 추가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일본재흥전략’을 내세우며 그렸던 강력한 경제 이미지와는 사뭇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2019년은 아베 총리의 일본에게 더 친절한 한 해가 될까?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이 시험대에 오르면서 일본은 더 심각한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즉, 일본은 대외적 이벤트들의 여파에 더 시달릴 수 있다.

 

로버트 뮐러 특별검사의 러시아 스캔들 조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심지어 가족 중에 누군가가 기소될 가능성이 열려있는 가운데 그가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다른 국가 때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즉, 중국을 상대로 새로운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중국의 성장률을 6% 한참 아래로 끌어내리거나 북한과 이란 등을 상대로 군사적 갈등을 위협할지도 모른다.

 

아베 총리에게는 트럼프 대통령과 무역협상을 미룰 변명거리가 줄어들고 있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연대 강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지만 협상은 난항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등 주요 수입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해 25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는 한편, 미․일 무역협정에 환율조작 방지 조항을 삽입할 것을 요구했다. 협상이 어떻게 끝나건 아베노믹스의 후퇴는 자명하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일본에게 2018년은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폭풍이 닥치면 평온한 시기를 누릴 기회가 더욱 더 사라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