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뒤 한미 양국에서는 북한이 마침내 ‘은둔 국가’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됐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건으로 체제 보장과 더불어 경제 번영과 국제 사회로의 통합이란 ‘보상’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런 ‘보상’이 보다 정상적인 국가 만큼 북한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할 수 있다. 외부 세계에겐 북한의 고립적이고, 전체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인 초무장 신군주 체제가 시대를 역행한 특이한 체제로 보일 수 있지만 누구도 이런 체제가 이처럼 놀랄 만큼 장기간 지속됐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세계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지만 붕괴 전망과 달리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북한 정권이 과연 변화할 의사나 능력을 갖고 있을까? 북한이 국제적으로 사회, 경제적 개방을 단행하면서도 여전히 기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특히 김 위원장과 그의 가족과 추종자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일 수도 있다.

 

확률과 예측을 무시하는 나라

북한은 사실상 전국을 쑥대밭으로 만든 전쟁, 유럽 공산주의를 종식시킨 대대적인 체제 변화, 인구의 10퍼센트를 죽음으로 내몬 살인적인 기아, 그리고 현재 유엔 결의안에 의해 시행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재라는 엄청난 외부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나 ‘고난의 행군‘으로 알려진 경제적 붕괴와 기근에 따른 파탄, 기근 이후 정권 붕괴를 점쳤던 사람들은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미국, 중국 중 어느 누구도 정권 교체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북한이 보다 정상화된 국가, 즉 지역 평화에 더 이상 위협을 가하지 않고 시민들의 번영을 도모하는 국가로 변화하기를 바란다.

 

게다가 지역 경제에 통합된 북한은 새로운 신흥시장 이상이 될 전망이다. 경제적으로는 동북아의 중심부의 블랙홀을 메워 남북한, 중국, 러시아 극동, 일본 사이의 경제적 유대관계와 기반시설을 개선시킬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지역 불안정의 주요 원천이 사라질 것이다.

 

세계 경제와의 동반 협력을 포함한 번영은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기 위해 김 위원장에게 제시한 당근이었다.

 

문 대통령은 4월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도로와 철도 연결, 공동 관광사업 등 남북 경제협력계획이 담긴 USB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 후 북한이 누릴 수 있는 번영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틀어줬다. 미국이 싱가포르를 정상회담 장소로 선택한 이유가 김 위원장에게 성공하고 번영한 아시아 도시를 가까이서 직접 볼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난해 한 번도 세계 정상과 만난 적이 없던 김 위원장은 불과 3개월 만에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두 차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을 한 차례씩 각각 만났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과거 어떤 북한 지도자도 현직 미국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외교적 고립을 깨기 위한 것이다. 북한이 진정 그들의 오랜 체제를 바꿀 수 있고 개방에 나설 수 있을까?

 

김정은의 우선순위는 번영이 아니다

미국은 비핵화를 원하고, 아시아는 안정을 원한다. 북한의 우선순위는 더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개방 가능성에 대해서 완전히 비관적이지는 않더라도 신중하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정권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다”며 “그들의 목표는 자기 보존이기 때문에 개방이 최선의 행동 방침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진욱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는 김 위원장이 예측불허인 트럼프 대통령을 이용하면서 국제 사회의 압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전략적이 아닌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그는 “나는 그들이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들은 살아남아 미국과 협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것은 그들이 바뀔 것이란 뜻이 아니다”고 말했다.

 

독재는 화염과 파괴로 무너질 수 있다. 독일 히틀러, 이탈리아 무솔리니,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리비아 카다피의 죽음은 외부 행위자와 요인들에 의해 야기되거나 가능했다.

 

미국에서조차 북한을 상대로 그러한 위험한 해결책을 쓰려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위 사례들보다 덜 종말론적 정권 교체 사례들도 존재한다. 구소련은 내부 의지의 경로 수정을 통해 동유럽 공산주의의 종말을 촉발시켰다. 아시아의 다른 공산국가들인 중국과 베트남은 둘 다 공산당 통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변화시켰다. 프랑코의 스페인, 피노체트의 칠레, 전두환의 한국 같은 우파 정권은 민주국가로 전환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은 뉴욕에서 열린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우리는 강하고 (외부 세계와) 연결된, 안전하고, 번영한 북한의 모습을 상상한다”며 “그것은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면서도 국제사회에 통합된 북한”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경제적 번영과 함께 국제 사회 편입을 비핵화의 대가로 약속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북한이 세계와 남한에 문호를 개방하면 3대 세습의 정당성이 압박 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브 국민대 교수는 “부유하고 자유로운 남한의 존재는 매우 매력적이다. 체제 붕괴를 막기 위해서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자국의 상황을 훨씬 더 위험하게 만드는 보다 성공한 형제 국가의 존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다. 북한이 개방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확인할 것이고, 그것은 북한에게 도전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북한의 유일한 상향식 변화

‘하향식(top-down)’ 북한이 경제 문제에서는 시장화라는 거대한 ‘상향식(bottom-up)’ 변화를 수용해 왔다.

 

1990년대 일어난 기근 이후 살아남은 몇몇 시장은 소비자 시장으로 바뀌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사회주의 국가 분배 시스템 붕괴 이후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이제 일상생활을 위해 시장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09년 화폐 개혁과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애도 기간 중 폐쇄 조치를 통해 시장을 통제하려던 북한의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북한 정권은 방침을 바꿔서 이제는 시장 영업을 허용하면서, 자원의 진출입을 통제하는 식으로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북한의 사회진화와 이데올로기를 전공한 크레이그 어거트(Craig Urquhart)는 “북한 정권은 사회의 유기적 변화를 이끌기보다는 그런 변화를 따라가는 신세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하와이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예정인 롭 요크(Rob York)는 “북한의 행동 양상을 보면 자기 방식대로 변화를 꾀하려고 한다”면서 “북한 같은 레닌주의 정치구조나 위대한 지도자를 숭배하는 권력 체계에선 암시장이란 개념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타협도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패 확산은 준 사법적 시장화가 낳은 부산물이다.

 

어거트는 “북한 사람들이 국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부패를 저지르고 있다. 실로 ‘공공‘ 기업이나 경제단위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연줄이 많은 가족에 의해 좌지우지된 지 오래됐으며, 사업가들은 관리들에게 돈을 먹일 수 있는 한 규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모든 상황은 북한 정권이 더 이상 예전처럼 경제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 교수는 “점점 약해지고 있긴 하나 그들은 기존 시스템과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고 있다”며 “그들은 결코 변화의 길을 논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화를 수용했다는 건 북한이 약간의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건설과 핵무력 완성이란 병진 노선을 추구해온 김 위원장은 새로운 시도를 할 준비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무엇이 변화의 신호가 될까?

안드레이 아브라하미안(Andray Abrahamian) 태평양포럼 CSIS의 연구원은 “북한에선 새로운 지도자와 국민들 사이의 새로운 포부, 그리고 새롭게 부상하는 지정학적 역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사업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북한은 대부분의 다른 독재 국가들보다 더 엄격한 시스템을 만들고 더 강력한 외부 위협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제약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변화 능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특히 한국과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이 여러 도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아주 큰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알리는 신호일 것으로 생각한다.

 

고 연구위원은 “사람들이 재산권을 갖고, 자기 사업을 소유하도록 허용하고, 이런 권리를 공식적으로 지켜주는 게 가장 큰 개방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다니엘 핑스턴 트로이 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는 “정책 변화나 다른 방향이 있다면 북한은 고르바초프가 글래스노스트(Glasnost, 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개혁)를 들고 나왔을 때나 2013년에 병진 노선을 택했을 때처럼 발표할 것이다. 그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 새 노선에 대한 법규나 규정을 통과시킬 것이다. 그들은 그럴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두고 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