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위험자산 시장이 크게 흔들렸지만, 정부와 중앙은행들의 적절한 대응으로 그런 우려가 크게 완화됐다. 한 마디로 예상치 못했던 거대한 사건이 자산 가치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명 ‘꼬리 위험’(tail risk)이 줄어든 것이다. 따라서 가장 위험해보였던 자산인 신흥시장(EM) 채권 등에 대한 투자가 매력적으로 변했다.

 

헤지펀드 입장에선 금리가 낮은 통화로 자금을 조달해 금리가 높은 나라의 금융상품 등에 투자함으로써 수익을 내는 거래인 ‘캐리 트레이드’를 위한 환경이 매우 좋아졌다. 내 모델상 최고의 위험/보상 상품은 필리핀 페소, 인도 루피, 인도네시아 루피아 같은 하이일드 신흥국 통화들이다. 중앙은행이 훌륭하게 정책을 운용하고 있고, 경제적 여건도 양호하다.

 

신흥시장 통화 중 따돌림을 받던 터키와 브라질 역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생겼다. 개인 투자자들은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서 신흥시장 통화 표시 채권에 투자할 수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달러 대비 신흥시장 통화 헤징에 드는 평균 비용이 폭락했다. 아래 차트에 나온 대로 이들 통화의 평균 변동성 역시 하락 중이다.

 

 

변동성이 줄어든 이유는 다양하다. 작년 치러진 브라질 선거에서 친시장 정부가 들어선 게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터키는 미국과의 대치를 끝냈고, 변덕이 심한 터키 대통령은 통화정책을 유능한 중앙은행에 맡겼다. 필리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고, 이것은 분명한 효과를 냈다.

 

터키,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모두 저유가의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위험 감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다. 연준은 전 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긴축정책을 쓰는 게 똑똑한 생각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난 5개월 동안 미국과 EM 증시 사이의 변동성 수렴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작년 8월에만 해도 신흥시장 주가 지수 ETF 옵션 내재변동성은 미국 증시 벤치마크 지수인 S&P500의 변동성(공포지수로 불리는 VIX 지수 기준)의 두 배였다. 하지만 위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제 이 두 지수의 변동성이 거의 비슷해졌다. 미․중 무역협상 타결 전제 하에 중국과 동남아시아 증시 투자가 권장된다.

 

모두가 ‘꼬리 위험’ 감소에 기대를 거는 건 아니다. 최근 머빈 킹(Mervyn King) 전 영란은행 총재는 전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런 경고는 늘 나오곤 한다. 현재 세 부채 상황은 2008년도와 비교해서 눈에 띄게 개선된 편이다.

 

 

위 차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2001년과 2008년 사이 세계 부채(중국 제외)는 근 두 배로 늘어났다. 2010년과 2018년 사이 세계 부채(역시 중국 제외)는 18% 증가했을 뿐이다. 중국을 계산에서 뺀 이유는 중국의 사례가 좀 특별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작년 2만 9,000km를 넘는 초고속 철도망을 포함한 인프라 구축을 위해 국영기업들을 통해 엄청난 부채를 졌다.

 

신흥국들도 부채 부담을 아주 크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브라질은 모든 외채를 상환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다. 신흥시장에 많은 정치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긴 하지만 최대 경제국들은 최근 몇 달 동안 이런 위험을 잘 통제해왔다. 단, 무능한 포퓰리스트가 통치하고 있는 멕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예외다.

 

위험 감수 성향이 덜한 투자자들은 신흥시장 채권보다 미국 회사채 투자를 선호할 수도 있다. 미국 회사채 투자 수익률이 12월 말 시장이 공포에 빠졌을 때와 비교해서 다소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위험/보상 수준은 나쁘지 않다. 다만, 이런 하이일드 채권에 투자할 때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에너지 시장이 채권 가격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에너지 회사들의 채권 발행 물량이 회사채 시장 전체를 흔들어놓을 만큼 전체 채권 발행 물량 중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작년 말 몇 달 동안 유가 헤징 비용(원유 옵션의 내재 변동성)이 미국 회사채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유가가 하락하고 헤징 비용이 올라가자 100개 투기등급 회사들의 회사채를 대상으로 한 신용 부도 스와프(CDS) 지표인 마킷 CDX 북미 하이일드 인덱스 스프레드는 급등했다. 스프레드 상승은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의 심리가 악화했음을 의미한다. 아래 차트는 1월 23일까지 5개월 동안 원유와 하이일드 시장에서 일어난 일을 보여준다.

 

적어도 금융시장 전문가들 생각에 세계 경제에 가장 큰 ‘꼬리 위험’은 중국 경제였다. 나는 중국 경제 성장이 대단한 위험거리가 될 거라고 믿은 적이 없지만, 중국의 성장률이 대폭 하락할 경우 원유 수요도 상당히 큰 타격을 받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중국은 연간 6%를 상회하는 비교적 안정적 수준으로 성장을 계속하고 있고, 원유 수입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몇몇 예외적 종목 투자를 제외하고는 나는 증시 투자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가 계속해서 걱정하는 건 세계 경제 상태가 아니라 증시 주도주들의 밸류에이션이다. 양호한 실적 보고를 낸 IBM의 주가를 9% 올리고, 부진한 보고서를 낸 캐티탈원파이낸셜의 주가를 6% 끌어내리는 시장을 믿기는 힘들다. 분기 실적 보고와 향후 실적 전망에 시장이 이처럼 과잉 반응한다는 건 투자자들이 현재 증시의 가치에 대해 상당히 불확실해 한다는 걸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