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은 물론 신흥국까지 전 세계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다. 경기 둔화로 선진국의 금융정책 정상화가 중단된 가운데,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확대로 부채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과도한 부채는 세계 경제의 잠재적인 위험 요인이다. 1997년 발생한 한국의 IMF 경제위기는 보유 외화 부족으로 대외채무를 상환하지 못해 발생한 외환위기였지만 과도한 기업 부채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도 파생상품이 문제였지만 근본적으로 과도한 부동산담보대출이 촉발한 부채 위기였다.

하지만 각국 정부는 비교적 태연하다, 관리가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부채의 규모보다 관리 가능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반면에 부채가 너무 많아 언젠가 부채 위기가 재현될 것이라는 경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금융 전문가 허경욱 전 OECD대사는 Asia Times와의 인터뷰에서 과도한 부채와 국제 공조 시스템의 붕괴,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등으로 부채 위기가 현실화 될 수 있다며 “가장 약한 고리는 중국”이라고 말했다.

허 전 대사는 고위 관료 출신의 국제금융 전문가다. 행정고시 22회로 공직에 입문해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장과 국제금융국장을 거쳐 1차관을 역임했다. 국제기구 근무 이력도 화려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했고, 특히 사무관 시절 세계은행의 ’영 프로페셔널‘로 채용되기도 했다. 정부 파견직이 아니라 채용 시험에 합격해 세계은행에서 근무했다. 현재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허 전 대사는 현재 AMRO의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AMRO는 ASEAN과 한·중·일 3개국이 역내 금융안정을 위해 마련한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 다자화 통화스왑 협정을 정착시키기 위해 싱가포르에 설립한 역내 감시기구다.

“모든 금융위기는 부채 위기…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허 전 대사는 “모든 금융위기는 부채 위기”라며 “현재 부채의 규모가 사상 최대다. IIF(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부채가 GDP의 약 3.2배”라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부채를 줄이지 않고 다른 부채로 위험한 부채를 대신하는 처방을 쓴 게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부채 위기 시 디레버리징을 거치면서 개인과 기업의 파산이 많았으나, 2008년 위기 때는 개인과 기업의 부채가 양적완화 정책과 정부 개입을 통해 중앙은행이나 정부로 이전됐다. 과거에는 위기 해소 과정에서 이런 적이 없었다. 결국 부채도 늘어났고 GDP대비 부채 비중도 위기 당시보다 높아졌다. 다시 말하면 돈이 많이 풀렸다는 얘기다.”

그는 “돈이 많이 풀리면서 금리가 하락하고 수익률이 떨어지자,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일드 헝그리(yield hungry)‘ 현상이 나타나면서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빚이 이전됐다”고 지적했다.

IIF의 올해 1월 부채 보고서(GLobal Debt Monitor)에 따르면 2018년 3분기 기준으로 전 세계 부채는 244조 달러로 2016년 이후 2년간 약 27조 달러 증가했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16년 3분기에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 320% 보다 다소 하락한 318%를 기록했다. 경제 성장으로 GDP 대비 부채 비중이 다소 낮아졌으나,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다..

244조 달러 중 정부 부채가 65조 2000억 달러, 비금융 기업부채가 72조 9000억 달러, 금융부문 부채는 60조 달러로 각각 집계됐다. 가계부채는 46조 1000억 달러를 기록했다. IIF는 특히 정부 부채와 비금융기업 부채가 지난 2008년 이후 전 세계 부채 증가분의 75%를 차지할 만큼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전에는 돈이 풀리면 인플레가 발생하고, 인플레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채무 상환이 어려워져 자산을 팔고 디레버리징이 일어났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 10년간의 양적완화에도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았다. 통화유통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이다. 경기도 둔화하기 시작했다. 당초 미국에 이어 유럽도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경기 둔화로 미국은 정상화를 중단했고, 유럽은 금리를 더 내릴 수도 있다.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고 중국은 2년 전까지 통화 긴축에 나섰으나, 미중 무역전쟁으로 완화적인 스탠스로 돌아섰다.”

허 전 대사는 “(부채가 과도하게 많은) 이런 상황이 한없이 갈 수는 없다”며 “언제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개연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허 대사는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저서 ‘이번엔 다르다’를 언급하며 “많은 사람이 위기 가능성을 진단할 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이번에는 과거와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로고프 교수가 2000년간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부채와 위기를 분석한 이 책에서 제시한 답은 이번에도 과거와 절대 다르지 않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문제가 터지는 시기는 금리가 올라가거나 경기침체가 오는 시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문제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너무 커졌다. 여러 나라에서 우파와 좌파 포퓰리스트 정부가 들어서 문제를 이연시켜 더 키우고 있다. 또 과거 브레튼우즈 시스템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출범한 G20 등의 정책 공조 시스템이 작동했으나, 이제는 이런 공조 시스템도 다 무너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 부채가 급증한 중국이 부채 위기를 맞을 개연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 부채가 가장 많이 늘어난 나라가 중국이다. GDP 대비 기업 부채 비율을 볼 때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졌을 때의 미국이나 부동산 버블이 터졌을 때의 일본 보다 중국의 비율이 높다.”

IIF에 따르면 현재 중국 기업의 부채는 GDP의 160%에 다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일본의 버블이 정점에 달했던 1989년의 132%보다 훨씬 높다. 가계부채도 GDP의 51% 수준으로 늘어났다.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에 나서면서 지방정부 채무도 계속 늘어나고 있으나 정부 부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8.5%로 양호한 수준이다.

중국의 관리 능력

중국 정부가 기업 부채 문제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견해에 허 전 대사는 부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통제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부채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금융시스템의 붕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불시착’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경착륙’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부채 문제가 터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 폭발력이 대외로 향하기 보다는 내부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이 외환거래를 통제하고 3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고 있는 가운데, 부채에서 외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작기 때문에 외환위기의 양상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중국 정부가 국영기업 부채 등을 일시에 디레버리징 시키지 않고 서서히 내재화할 수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통제된 디레버리징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 금융시스템은 정부가 장악하고 있다”며 “정부가 4대 은행의 부채를 자산운용사를 만들어 이연시켰다. 이들 은행이 대출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이런 식으로 오랜 시간 동안 부채를 점차 줄여나가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통제력으로 최악의 상황을 막아도 과도한 부채에 따른 충격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그는 말했다. “부채가 많으면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기업 경영이 어렵다”는 얘기다. “경제 시스템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신용이 급속하게 축소되고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경기가 급랭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는 “외환위기같은 시스템 위기를 겪지 않아도 중국의 경제 규모가 커져 경기가 급랭하는 것만으로도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수 밖에 없다”며 “한국도 중국에 대한 익스포져가 크기 때문에 잘 대비해야 한다. 남방정책 등을 제대로 추진해 투자와 수출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금융센터도 올해 1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기업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센터에 따르면 중국의 기업부채 규모가 지난해 2분기 20조 3000억 달러로 2008년 리먼 사태 당시의 4조5000억 달러에서 4.7배 증가했고 GDP대비 비율도 155.1%로 급등했다. IIF는 3분기 기준으로 157.1%로 더 높아졌다고 밝혔다.

센터는 “기업 부채가 은행부실 및 민간투자 여력 감소 등을 초래해 경기 부진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부동산시장 위축과 맞물릴 경우 파급 영향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회사채 발행 담보의 약 60%가 부동산이고 전체 회사채 발행에서 부동산 업종의 비중도 35.6%에 달하기 때문이다.

허 전 대사가 지적한 중국 부채 문제가 내부에서 터지는 상황에 대한 언급이다.

센터는 대내외 환경이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할 경우 기업 구조조정과 산업 혁신이 지연되면서 중국경제의 불안이 증폭되고, 세계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또 미국의 압력으로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이 불가피한 가운데, 수익성이 낮은 일대일로 추진과 무분별한 달러채권 발행 증가 등으로 기업 건전성이 악화되고 시장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통제 능력을 고려할 때 위기 발생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전 세계 채권시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한 채권 전문가는 “중국의 부도율이 올라가긴 했으나, 부도가 나는 기업은 사이즈가 작은 기업”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감안해 큰 기업은 살리고 작은 기업의 디폴트는 허용하며 점진적으로 디레버리징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이렇게 부채 문제에 대응한다면 위기 발생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미국ㆍ일본 정부 부채와 한국의 가계 부채

IIF에 따르면 미국의 정부 부채는 지난해 3분기 현재 GDP의 108.7%에 달한다. 유로존은 이보다 다소 낮은 100.2%다. 하지만 비금융기업 부채는 미국이 GDP의 72.6%, 유로존은 106.5%로 중국 보다 낮다. 가계부채는 미국이 GDP의 75%, 유로존은 57.6% 수준이다.

일본의 정부 부채는 GDP의 250%를 넘어섰다.

허 전 대사는 일본의 정부 부채 문제가 덜 심각한 이유는 “외채가 거의 없고 금리가 낮아서 버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리가 올라간다면 상환 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나, 금리는 GDP가 커지면서 올라가는 것”이라며 “GDP 증가 속도와 금리 상승 속도의 문제”라고 말했다. 금리가 GDP 증가 속도보다 빠르게 상승하지 않는다면 관리가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도 정부 부채가 많지만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국가 부도 위험은 없다. 다만 부문별로 문제가 될 수는 있다.”

그는 중국이 GDP 규모에서 미국을 앞서게 돼도 달러의 기축 통화 지위를 위협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축통화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미국이 1차대전 이후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확실하게 부상했으나,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건 30-40년이 지난 2차 대전 후였다.”

일각에서는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추진 소식에 신흥국 시장이 발작을 보였던 일을 예로 들며 통제가 가능한 중국이나 일본보다 신흥국발 외채 위기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허 전대사는 “이미 신흥국 간 상당한 차별화가 진행됐다”며 “위기를 겪을 나라는 벌써 겪었고, 앞으로 통화정책 정상화나 경기침체 등으로 신흥국발 위기가 와도 차별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국지적인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흥국이 자유변동환율제를 도입했고 금융위기 이후 IMF뿐 아니라 지역별로 금융안전망을 갖춰 놓은 것도 신흥국 리스크를 줄여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IMF는 금융위기 이후 정책감독을 받지 않고 긴급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신축적 공여(FCL)과 위기 예방용 단기대출(PLL)을 도입했고, ASEAN+3은 2200억 달러 규모의 다자간 통화스왑 계약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를 도입됐다.

한국의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금융시스템 붕괴와 같은 재앙적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한국은 DTI나 LTV 같은 거시건전성 조치를 통해 가계부채를 잘 규제해 왔기 때문에 시스템 위기까지 가지는 않을 전망이다. 다만 한계가구의 디폴프 발생 가능성 등 사회적 부담은 피할 수 없고, 가계부채가 소비를 억제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