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번영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경제발전에서 소외된 나라다. 핵무기 개발 등으로 전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으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서 드러난 것 처럼 제재가 풀리기까지 아직 갈길이 멀다. 북한에 대한 외부 세계의 이해도도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북한은 역설적으로 개척의 여지가 큰 시장이기도 하다.

마이크 헤이는 외국인들이 북한에서 어떻게 사업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스코틀랜드의 스털링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뉴욕 주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이 서양인은 평양의 중심가에서 12년간 컨설팅을 겸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로펌을 운영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말 북한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면서 그의 사업도 어려워지자 평양을 떠났다. 그는 올해 11월 법무법인 충정에 합류해 북한팀을 이끌고 있다.

헤이의 북한과의 인연은 한국에서 시작됐다. 그는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에 매료돼 지난 1990년 서울의 한 법무법인에 합류했다. 햇볕정책이 추진되자 헤이는 1998년 나진-성봉 경제특구의 사업 타당성 조사 업무를 맡아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당시 북한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래를 보았다. 그곳이 바로 미래의 장소로 보였다. 당시 나진의 모습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핵심은 (경제특구를 추진하겠다는) 결단이었다.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는 집단적인 결단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그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같은 이유로(집단적인 결단에 매료돼) 한국에 왔다. 그런데, 내 커리어를 확장하려는 야심이 자연스럽게 북한에서도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프로젝트 타이거

헤이는 자신의 야심찬 북한 진출 계획을‘프로젝트 타이거(Project Tiger)’로 불렀다. 그는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북한 사람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들은 오히려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들은 (나의 북한 진출로부터)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신뢰할 만한 로펌을 유치하는 것은 호랑이(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일 고기를 준비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 2000년 첫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 다음해인 2001년 헤이는 평양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시작했고, 법률자문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그때부터 그는 북한 정부 변호사들과 교류했고, 북한 무역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헤이가 설립한 ‘헤이 카브 앤 어소시에이츠’는 평양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이 설립한 로펌이었다. ‘카브(Kalb)’는 Korea Advisors on law and Business의 약자였고, 북한 무역부 산하 기관 변호사들도 참여했다. “그들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고, 모두 김일성 대학 법대 출신이었다. 외국 법인이나 기업들과 함께 일한 경력도 상당했다.” 헤이는 한때 서너 명의 북한 무역부 직원들이 자신의 로펌에서 급여를 지급받으며 근무했다고 밝혔다.

헤이는 북한에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도 있다며 “그런 질문을 항상 받는데, 현직 외교관들도 같은 질문을 한다. 북한에 법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헤이는 한 교통망 관련 사업에 얽힌 일화를 공개했다. 그의 고객이 세계 유수의 로펌으로부터 상세한 의견서를 받았는데, 그 의견서의 전체 내용이 북한이 아닌 한국 법에 기반한 내용이었다.

그는 남북한의 법이 모두 일제강점기에 전해진 성문헌법에 기원을 두고 있다며 한국에서의 경험이 북한에서 로펌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헤이는 고객들의 비밀 준수에 철저했고, 민감한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종종 즉답을 피했다. 그는 북한을 언급할 때 공식 영어 국가명인 DPRK(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를 사용했다. 그의 고객들 중엔 대기업과 중소기업 뿐 아니라 NGO들도 있었다. 그는 “고객들은 그들이 주주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걸 원치 않는다”면서 “그들은 불법적으로 사업을 하지 않았다. 다만 언론 노출을 피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 항공 산업, 금융,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에너지, 음식료, IT, 광업, 보험, 철도 교통, 섬유, 무역과 관광 등의 사업 분야에서 법률자문 서비스를 제공했다.

고객 중 다수는 아시아인이었고, 특히 동남아시아인이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유럽인이 많았고, 간혹 북미지역에서 온 고객도 있었다. 북한의 최대 교역 상대국은 중국이다. 헤이는 “압도적 다수의 중국 기업은 법률자문을 받지 않았지만, 내 고객 중 일부 중국 기업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수의 고객은 사법권에 대해서는 해외 로펌으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따라서 헤이가 맡은 일은 주로 협상 지원이었다. 적절한 협상 파트너를 찾아주고, 의견서를 작성해주거나 분쟁을 조정해주는 일이었다.

헤이는 북한 관료들과 북한 법에 대해 상의하고, 그들과 함께 중국, 프랑스, 러시아, 싱가포르, 우크라이나, 영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 고객들의 법률 대리인을 맡지는 않았다. “북한의 공식적인 법적 절차나 프로젝트에서 북한 기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로펌의) 독립적인 분위기를 해칠 것으로 생각하고 이런 의식적인 선택을 했다. 우리 로펌이 독립성을 유지해야 외국인 투자자들이 안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고, 북한 사람들은 반발 없이 우리의 이런 입장을 이해했다.”

헤이는 로비나 신속한 사업 추진 절차와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난 예외 인정 등에 관해서도 컨설팅 해줬다. “북한 사람들에게 (외국인 투자 사업 추진) 속도를 내자고 설득했다. 북한 상황이 30년 전 한국 상황과 다소 유사해서다.” 헤이는 고객들의 비자 발급 대행 업무에서 성공률 100퍼센트를 자랑했다.

평양 중심가 로펌 사무실에서 북한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는 마이크 헤이의 모습. (사진 마이크 헤이 제공)

 

북한의 외국인 투자 관련법

북한에서의 협상은 한국에서 보다 직설적인 경향이 강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의 협상보다 쉽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그들의 언어는 보다 직접적, 직설적이며, 이런 성격은 그들의 전반적인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면서 “북한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을 완강히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모든 협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배정된 북한의 가이드 또는 의전 관리자(protocol manager)였다. 한번은 그의 고객이 협상 막바지에 새로운 조건을 계약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즉시 의전 관리자와 접촉해 문제를 해결한 적도 있다고 헤이는 회상했다. 의전 관리자는 협상에서 누가 가장 중요한 인물인지 명확히 알려준다. 북한에서는 협상 대상자가 도처에 널려 있어 이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고 헤이는 말했다.

북한은 전국적으로 외국인 투자지역을 지정했다. 평양에는 정보기술(IT) 허브를 추진하고 있고, 나진-성봉 지역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기업들의 투자를 받고 있다. 헤이는 북한의 외국인 투자 관련법이 “놀랄 만큼 선진적”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외국인 투자법은 100개 이상의 법과 조례로 이루어져 있다. 헤이는 북한 정부가 외국인 투자법을 확대하고 있고, 경제와 기술 발전에 맞춰 계속 개편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이 극단적인 애국주의로 유명하지만, 공정한 분쟁 해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들이 주로 거래대금을 지급하지 않았거나, 납품한 제품이 계약상의 세부내용과 다르다는 이유로 계약 위반에 따른 분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법적 분쟁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을 변호했다고 말했다. 일부 승소를 포함한 그의 승소율은 70퍼센트 정도였다.

법적 분쟁으로 가기 전 중재 시스템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기도 했다. 헤이는 “북한에는 고도로 발전된 중재 시스템이 존재한다”며 “다수의 중재자들이 독일과 스웨덴에서 트레이닝을 받았고, 중재 판정문의 질과 법적인 정밀함의 수준은 한국에서 경험한 것과 같거나 뛰어넘는 정도”라고 말했다.

헤이는 북한의 3개 주요 부처로부터 지원을 받는 주요 북한 기업과의 격렬했던 중재 과정을 소개했다. 당시 중재위원회는 결사적으로 헤이의 출석에 반대했다. 그러자 격노한 북한의 중재자가 중재위원회가 계속해서 헤이의 출석을 반대하면 심리를 즉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소동 후 심리는 그날 마무리가 됐다.

성공과 실패

북한은 석탄과 구리, 희토류, 해산물, 산악 채소류 등의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해외에 알려진 북한산 브랜드는 대동강맥주가 유일하다. 대동강 맥주는 중국의 일부 지역에서 하이네켄과 같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보유한 가장 큰 자산은 인력이다. 중국과 유럽 기업들이 섬유 봉제업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다.

헤이는 서유럽 에너지 사업과 몽골의 구리 광산, 유럽 제약사 등 다양한 성공 사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긍정적인 평가와 달리 북한에서의 성공 사례는 매우 드물다.

북한에 진출한 대형 외투기업인 이집트의 오라스콤(Orascom)은 무선통신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오라스콤은 2015년 북한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본국으로 회수할 수 없었다. 헤이는 “오라스콤은 내 고객은 아니었다”며 “그들은 컨트리 리스크(country risk)를 짊어지고 사업을 시작했고, 이는 환전의 문제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호황을 맞았던 건 지난 2000년대 초반이었다. 북한의 전략무기 개발 프로그램 추진에 따른 제재가 있었으나, 이 제재는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헤이는 “당시 북한은 제재에 큰 관심이 없었다”며 “대형 건설 사업과 화려한 레스토랑, 중산층의 부상 등이 모두 제재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헤이는 2015년까지도 북한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있었으나, 2016년 북한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되면서 중국인 투자가 동결됐고, 다른 외국인 투자도 씨가 말랐다고 전했다. 마침내 헤이는 2016년 말 북한에서의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