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상영된 러시아 블록버스터 영화 <T-34>는 나치 강제수용소를 탈출한 가공의 러시아 영웅들과 부분 개조한 동명의 전차를 미화한 영화다. 영화는 개봉 첫 주 1,060만 달러(120억 원)를 벌어들이며 러시아 제작 영화 사상 최대 수입을 올렸다.

T-34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전차로 평가된다. 1940년과 1946년 사이 5만8,000대 이상이 생산됐다. 하지만 영화는 T-34가 미국 발명가와 대숙청(Great Purge) 당시 스탈린에 의해 처형된 두 명의 혁신적 러시아 군 지도자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숙청이란 구소련에서 스탈린 정권의 중기인 1930∼38년 단행된 반스탈린파 공산당원·군인·지식인·대중에 대한 대대적인 제명과 투옥 및 숙청 사건을 말한다.

미국 발명가의 이름은 J. 윌리엄 크리스티(J. William Christie)였다. 크리스티는 미국 남북전쟁 직후인 1865년 5월 뉴저지 주 뉴밀퍼드에서 태어났다. 앞바퀴를 돌려서 주행하도록 하는 자동차 구동방식인 전륜구동이 그의 발명품이다. 그때가 1905년도였다.

크리스티는 전륜구동 방식을 보완하기 위해서 전륜구동 독립식 현가장치를 최초로 발명했다. 이것은 노면 상태가 나쁜 길을 달릴 때 생기는 충격을 잘 흡수하지 못했던 리프 스프링(leaf spring) 대신 현재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거의 모든 차량에 쓰이고 있다. 크리스티는 전륜구동 방식과 그가 개발한 다른 기술들을 이용해서 모든 현대 전차의 어머니격인 혁신적인 전차를 설계했다.

 

다만, 크리스티가 생각한 전차는 대부분의 군대가 실제로 원했던 전차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주로 영국과 프랑스군에 의해 전장에서 최초로 전차가 쓰였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엔 적의 참호를 장악할 군대와 보조를 맞춰 움직일 수 있는 전차를 선호했다. 당시 전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9.6킬로미터였다.

이어 미군은 더 크고, 더 중무장한 전차 개발에 나섰지만, 전차가 공격 시 기병을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지를 알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1940년 히틀러가 영국 침공 계획을 세웠을 당시(바다사자작전(Operation Sea Lion)) 650대의 전차와 4,500마리의 말을 동원할 계획을 세웠다는 걸 알고 있다.

크리스티는 180도 다른 생각을 했다. 그는 가벼운 전차라야 평야와 도로를 빠르게 질주해 적의 주력군을 파괴함으로써 적을 신속히 섬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전차에 각 전륜이 긴 코일 스프링에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특별한 하체 현가장치를 장착했다. 또한 이 현가장치에 양호한 도로에서 트랙(track) 대용으로 달릴 수 있는 고무 도로 보기휠(bogie wheel)을 덧붙였다.

트랙으로 달릴 경우 크리스티의 전차는 근 시속 76km를 달릴 수 있었지만 보기휠로 달릴 경우에는 시속 111km까지 주행이 가능했다. 어떤 현대 전차도 그렇게 빠르게 달릴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미군의 주력 전차인 M-1의 최고 시속은 72km였다. 또한 크리스티의 전차는 당시 기준에서 봤을 때조차 경무장만 했다. 그는 또한 날아오는 포탄과 폭발 파편을 피할 수 있게 전차 장갑을 경사지게 만들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전차들은 경사진 장갑을 쓰고 있다.

크리스티의 디자인

미군은 크리스티의 전차를 테스트해보라는 정치적 압박을 받았고, 몇 가지 시제품이 미군에게 전달됐지만 미군 사령관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전투 전략에 더 맞는 다른 종류의 전차를 원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크리스티가 설계한 것과 똑같은 전차를 찾고 있었다. 방어가 아닌 공격에 앞장설 수 있는 전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934년과 1938년 사이 소련차량수송기갑부대(Soviet Motor Transport and Armored Troops) 부대장은 인노켄티 카펠레스키Innokenti Khapeleskii)였다. 그는 직속상관인 적군(赤軍) 원수 미하일 투크하체프스키(Mikhail Tukhachevsky)로부터 러시아군에 맞는 혁신적인 공격 전차 디자인을 찾아보라는 명령을 받았다.

카펠레스키는 독일(당시 러시아는 비밀리에 독일군을 지원하고 있었다)과 체코슬로바키아를 방문했지만, 체코인들은 정치적 이유 때문에 러시아를 지원하려고 하지 않았다. 체코 전차는 나중에 나치의 손아귀에 들어가서 독일이 프랑스와 벨기에를 공격할 당시 사용됐다.

카펠레스키는 이어 미국으로 갔는데, 거기서 본 크리스티의 전차가 바로 그가 찾던 전차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원과 막심 리트비노프(Maxim Litvinov) 당시 러시아 외교장관의 외교적 협상으로 두 대의 전차가 ‘농업용 기계’ 용도로 구소련에 수출됐다.

2차 대전 승전 73주년 축하 기념일인 2018년 5월 9일 군 행사에 등장한 T-34 탱크. (사진, AFP)

Picture Caption: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나치 독일 승리 73주년 축하 행사날인 2018년 5월 9일 거리 행진 중인 T-34 전차 모습 (사진: 엠라덴 안토노프 기자)

러시아는 크리스티의 디자인을 활용해서 최초의 현대 전차인 BT 전차를 제작했다. BT 전차에는 처음에 출력이 450마력인 미국의 ‘리버티’ 엔진이 장착됐다.

1939년 BT 전차는 일본군과 벌인 몽골 할힌골(Khalkhyn Gol) 전투 때 실전 투입됐다. 전투 계획은 게오르기 주코프(Georgi Zhukov) 장군이 세웠고, 작전은 투크하체프스키가 짰다.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러시아는 무장이 강화되고, 전차 주위의 경사진 장갑 부분과 포의 크기를 더 늘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러시아는 이런 점들을 반영한 끝에 1940년에 BT 전차를 이을 T-34 전차 개발에 성공했다.

주코프는 영웅이 됐지만 투크하제프스키나 카펠레스키는 어떤 환영 행사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투크하제프스키는 1938년 체포돼 고문을 당한 끝에 ‘파시스트 조직원’임을 실토해 같은 해에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펠레스키도 역시 같은 무렵 반역자로 낙인 찍혀 총살당했다.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블록버스터 <T-34>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기갑부대의 기본을 이룬 전차를 만든 미국인 발명가를 조명하지 않는다. 아울러 스탈린에 의해 살해돼 살아서 향후 승리를 지켜보지 못한 두 명의 러시아군 지도자도 기억하지 않는다. 영화가 이 모든 진실을 말했다면 더 나은 영화가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