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실시되는 중간선거를 앞둔 필리핀이 지난달 12일부터 선거전에 돌입했다. 이런 가운데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하면서 중간 선거에서 그의 측근들의 상원 입성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5월23일 실시되는 중간선거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평가하는 국민투표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의 재임 추진에 결정적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법부가 가진 힘의 균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필리핀 중간선거에서는 하원의원 전체 297명과 상원의원의 절반인 24명, 지방자치단체장을 포함해 모두 1만8,000명가량의 공직자를 새로 선출한다.

정치 분석가들은 중간선거 결과로 필리핀의 민주화가 후퇴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특히 현재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상원을 측근들이 장악할 경우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면적 사법제도 개편을 밀어붙일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 즉, 그는 대통령을 포함한 선출관리들의 법적 임기제한을 없애고, 연방 통치 시스템으로의 변화 등 국가 헌법 개정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중간선거 분위기는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작년에 다양한 논란에 휘말리며 떨어졌던 그의 지지율이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 국민 대다수를 신자로 두고 있는 가톨릭교회와 자주 언쟁에 휘말렸다. 가톨릭교회가 그가 추진 중인 ‘마약과의 전쟁’이 적법한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아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그에게 줄곧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그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을 향한 독설도 멈추지 않았다.

2015년 11월 30일 대통령 선거 운동 포스터 앞에 서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모습. (사진, AFP)

 

두테르테 대통령이 벌인 ‘마약 전쟁’으로 2016년 중순 이후 수천 명의 마약 용의자들이 숨지자 그는 국내외에서 비판에 시달렸다. 이와 관련해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그에 대한 예비 조사를 실시했고, 필리핀 국민 사이에서도 그의 잔혹한 범죄 처벌 방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작년 12월 16일부터 19일 사이 여론조사기관인 사회기상관측소(Social Weather Stations, 이하 SWS)가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두테르테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74%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정치를 ‘아주 잘한다’고 응답한 사람 비율도 60%가 됐다. 이 같은 지지율은 집권 2년차 무렵 과거 대통령들의 지지율에 비해서 높은 편이며, 전분기 대비로도 6%p 올라간 것이다. 작년 1년 동안 실시된 여론조사의 그의 지지율 평균도 54%로 2017년도에 비해서는 다소 낮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양호한 수준이다.

사회기상관측소 조사 결과를 보면 그의 인기는 모든 선거구에서 상승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지율은 1년 전과 비교해서 무려 22%p가 뛰었고, 중상위층 계층 지지율과 빈곤층 지지율은 각각 21%p와 20%p씩 상승했다. 하지만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인 계층은 전분기 때보다 11%p가 높은 65%가 지지 의사를 표시한 대학생 계층이었다.

2017년 2월 26일 마닐라에 모인 두테르테 대통령 지지자들이 그가 추진 중인 강력한 마약단속을 지지하는 시위를 열고 있는 모습. (사진, APF)

 

살바도르 패널(Salvador Panel) 대통령 대변인은 “대통령실은 SWS 조사 결과를 환영한다. 이번 결과를 보면 모든 사회․정치 계층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우리는 대통령님을 계속해서 지지해주시는 필리핀 국민들께 감사한다. 필리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더 열심히 일하고 섬기겠다”고 말했다.

SWS 조사와 별도로 12월 중순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인 펄스아시아(Pulse Asia)가 실시한 조사 결과 역시 여론이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흐르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조사 결과를 보면, 그의 지지율은 3분기 조사 때보다 6%p 높은 81%로 집계됐다. 이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16년 이후 집권한 이후 기록한 가장 높은 지지율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필리핀 대통령들은 연말 실시되는 여론조사 때는 더 높은 지지율을 얻는다. 성탄절과 신년 축제들이 열리면서 일시적으로나마 정치적 분열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시 올라간 데는 미국의 ‘발랑기가 종’(Balangiga Bells) 반환 등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원래 이 종은 필리핀 사마르섬 발랑기가의 성당 종탑에 있었는데,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진행된 미국-필리핀 전쟁 당시 미군이 전리품으로 가져갔다가 최근 반환했다. 취임 이후 줄곧 친중탈미(親中脫美) 노선을 밟아왔던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의 필리핀 민간인 학살을 상징하는 ‘발랑기가 종’이 ‘필리핀의 유산’이라며 미국에 반환을 요구해왔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필리핀 극빈자들에게 특히 큰 타격을 주었던 물가 상승 문제를 해결한 점도 그의 지지율 반등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필리핀의 물가는 7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면서 12월 말에는 10년래 가장 높은 6.7%까지 올랐지만, 최근 들어서는 물가 안정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가 생필품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미쳤던 식료품 수입을 대거 늘리자 11월 물가 상승률은 6% 수준으로 떨어졌고, 올해에는 5% 정도로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중간선거 때 상원의원 선거에 나설 그의 측근들의 당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좌)과 그의 최측근인 크리스토퍼 로렌스 ‘봉’ 고( Christopher Lawrence “Bong” Go). (사진, 필리핀 정부 배포)

 

최근 실시된 여론 조사 결과들을 보면 두테르테 대통령의 오랜 협력자이자 최측근인 크리스토퍼 로렌스 ‘봉’ 고의 인기가 가장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나 그의 상원 입성이 유력시된다.

최근 필리핀 전역에는 그가 나오는 포스터와 게시판들이 등장하고 있다. 두테르데 대통령을 ‘아버지’로, 고를 ‘필리핀의 맏형’으로 부르며 두 사람의 모습을 같이 실은 포스터도 간혹 눈에 띈다.

최근 조사 결과들에 따르면 경찰총장을 지낸 바토 델라 로사(Bato Dela Rosa) 등을 포함해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상원 의원 당선도 유력시되고 있다.

야당 후보들 중에는 대통령 후보였던 마 로하스(Mar Roxas)를 포함해 불과 2명만이 상원 의원 당선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힘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