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에 대규모 베팅하고 있는 대표적인 투자자를 꼽으라면 일본은행(BOJ)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3월 31일로 끝난 2018/19년 회계연도 중 일본 증시에서 31년 만에 최대인 500억 달러(67조원)를 팔아치웠다. 그러자 BOJ가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서 외국인이 매도한 만큼의 주식을 매수했다.

작년에 BOJ의 대차대조표가 4.9조 달러인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고려해왔을 때 이런 식의 주식 매수 계획을 이어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우선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팀은 발행 국채의 절반 이상을 매집함으로써 일본 국채시장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런데 이제는 주식을 대거 매수하는 중이다. BOJ가 세계 최대 헤지펀드로 변신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 BOJ의 거래는 오로지 ‘매수’ 한 쪽으로 쏠려있다. 6개월 전, 일본 경제 낙관론자들은 BOJ가 역사상 가장 공격적이었던 통화완화 실험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일명 ‘테이퍼링’(tapering)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트럼프는 그런 예상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국내적으로, 일본은 경기침체 가능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지방선거와 참의원 선거를 치러야 한다. 전국 11개 광역단체장과 광역단체에 준하는 정령시 6곳의 단체장을 선출하는 통일지방선거는 4월 7일 이미 실시됐고, 참의원 선거는 오는 7월에 치러진다. 선거 패배를 원하지 않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입장에서는 심각한 경기 둔화를 바라지 않고 있다.

6년 동안 BOJ를 이끌었지만 약속했던 2%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에 실패한 구로다 총재도 경제에 관해서 속이 편할 리 없다. BOJ는 지금 덫에 걸려있다. 매입 채권 규모를 줄이려니 채권 금리가 올라가면서 기업과 소비 수요가 더 타격을 받을지 모른다. ETF 매입 규모를 줄이려니 증시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BOJ가 500억 달러의 주식을 매입했어도 토픽스 지수는 지난 12개월 동안 4% 가까이 하락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알아둬야 할 교훈은, 다양한 자산군을 적극적으로 매수하는 것과 매수했던 걸 파는 건 아주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구로다 총재는 2015년 이후 매해를 시작할 때마다 연간 80조 엔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중단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증시 부양을 줄이기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선진국 중앙은행이 증시의 ‘큰손’ 노릇을 한다는 걸 뭔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중국은 그렇게 한다고 쳐도 선진 7개국(G7)에 속하는 일본까지 그렇게 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서둘러 일본 시장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이유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무역전쟁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일본일지 모른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베 총리가 2012년부터 수출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2월 일본의 수출액은 전년대비로 1.2% 감소하면서 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1월에는 8.4% 급감하면서 주식시장을 흔들어놓았다. 3월 대형 제조업체들의 업황판단지수(DI)인 단칸 지수는 지난분기(19) 대비 7포인트 하락한 12로 집계됐다. 악화는 2분기만으로, 하락폭은 2012년 12월(9포인트 악화)이래 6년 만에 가장 컸다.

지난 6년 동안 엔화 가치가 30% 하락한 이로 인한 누적 효과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반면에 무역전쟁은 소비자, 기업, 투자자 모두에게 심적 타격을 주고 있다. 일본이 미국과 무역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우려도 이러한 심적 타격에 한몫을 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협상 시 엔화 가치 절상을 요구할 것이다.

구로다 총재가 추가 부양책을 쓰려고 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살 게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를 “미쳤다”면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기준금리를 50bp 내리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일본이 시장에서 결국 철수할 수는 있을까? 앞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확실히 알 수 있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BOJ가 고용시장을 개혁하거나, 혁신을 장려하거나, 관료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더 노력했더라면 굳이 시장의 국유화와는 다른 길을 걸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담한 구조 개혁을 등한시한 탓에 헤지펀드처럼 변한 BOJ는 당분간 계속해서 일본 국채와 주식 매입에 나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