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함에 따라 한국은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CPTPP는 미국이 TPP 탈퇴를 선언한 후 일본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뉴질랜드,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페루, 브루나이 11개국의 참여로 출범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지난주 자유무역과 공정무역을 주제로 개최한 포럼인 아산 플레넘에 참석한 요키코 후쿠가와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CPTPP 가입에 따른 가시적인 혜택이 나타나면 미국 같은 경제 규모가 큰 나라의 가입을 기대할 수 있다며 “유럽연합은 그 자체로 (시장이) 충분히 크고, 중국도 그들만의 세계를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있다. TPP는 우리가 미래에 미국 경제권과 결합 되도록 만들어진 협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인 태미 오버비 미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은 “한국이 가입하기를 희망한다”며 “(한국의 가입은 CPTPP에) 무게감을 더해 적절한 시기에 미국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일 관계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후쿠가와 교수는 일본은 현재 중국과 인도와의 경제 협력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말하고 “한일 약국간 정치적 갈등 때문에 한국의 CPTPP 가입이 현재로서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달 일본 산케이 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 정부가 CPTPP 가입을 신청하면 이를 거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CPTPP 가입을 무기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모양새다. CPTPP는 11개 가입국이 모두 찬성해야 가입할 수 있는 구조다.

한일 관계는 위안부 피해 보상을 둘러싼 갈등과 강제 징용 피해자 보상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일본 자위대 해상 초계기의 한국 해군 함정 주변 위협 비행 등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와 달리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가 한일 관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으나, 일왕은 정치 권력을 갖지 못한다는 한계 때문에 역할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포럼에 참석한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CPTPP는) 새로운 국제 무역질서에 편입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기회다. 하지만 일본과의 정치적 상황이 기회를 놓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는 등 WTO 중심의 자유무역 질서가 위협 받고 있는 가운데, CPTPP와 같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현재 CPTPP 회원국들과 가입 가능성을 놓고 예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가입 추진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CPTPP는 가입을 희망하는 나라가 기존 회원국과 예비 협의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대외경제국의 한 관계자는 “CPTPP 가입에 득실이 모두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검토하면서 예비 협의를 진행하는 중”이라며 “아직 가입 추진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 유럽연합은 물론 CPTPP 가입국 중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베트남, 페루와 FTA 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따라서 CPTPP 가입은 사실상의 한일 FTA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는 또 이와 별도로 한중일 FTA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가입을 결정하고 본격 추진할 경우 일본의 반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지의 여부에 대해 이 관계자는 “아직 CPTPP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는 룰이 정해진 게 아니다. 회원국 간 여론 형성 과정을 통해 가입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가입국이 한국의 경제 규모 등을 고려해 가입을 강하게 희망하면 일본이 반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판단이 깔린 발언이다.

일본과의 예비 협의에 대해서는 “아직 협의하지 않았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