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동통신서비스업체 비엣텔이 지난달 25일 하노이에서 5G 전파 송출 테스트에 성공했다. 베트남 군부가 소유하고 있는 비엣텔은 스파이 행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중국 화웨이의 장비나 기술 지원을 배제하고 독자 기술로 5G 통신망 구축에 나섰다.

미국이 미중 무역전쟁의 연장 선상에서 반화웨이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나, 영국과 독일 등 주요 동맹국이 화웨이 장비 사용을 배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태국 등이 화웨이와의 협력을 통해 5G 통신망 구축에 나서는 등 화웨이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달랐다. 미국의 반화웨이 캠페인 동참보다는 통신망의 안전과 보안을 확보하기 위해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나섰다.

앞으로 베트남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동남아 전체의 경제와 안보 지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베트남 공산당은 지난 1988년 “친구는 늘리고 적은 줄인다”는 외교 전략을 채택한 후 이런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의 가장 큰 교역국인 중국은 오랫동안 베트남에 대해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러시아는 베트남의 주요 무기 공급원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응우엔 푸 쫑 베트남 국가 주석 (사진: AFP)

 

하지만 최근 수년간 베트남과 미국과의 교역 규모가 크게 늘어 나는 등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에서 베트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있다. 이런 양국 관계 증진은 이를 바라보는 중국의 대응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데릭 그로스만 선임 국방 분석가는 “중국 정책 당국자들은 (베트남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우위에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며 “폭넓고 깊은 경제 교류뿐 아니라 사회주의 시스템을 공고히 하기 위한 공산당 간 교류, 수천년 간의 역사와 문화적 교류 등을 통한” 긴밀한 양국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현재 베트남의 최대 해외 투자국이자 최대 수입국이다. 2017년 말 기준으로 베트남 수입품의 35%가 중국산이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베트남의 두 번째로 큰 수출 시장이다. 중국의 베트남 투자 규모는 올해 1-4월 중에만 16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과 베트남과의 교역 규모는 지난 1995년 4억5100만 달러에 그쳤으나 지난해 589억 달러로 급증했다. 2013-2018년 5년간 양국의 교역 규모는 두 배로 늘어났다.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응우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와 미국 보잉사가 관련된 210억 달러에 달하는 3건의 경제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 체결로 베트남의 대미 무역흑자가 상당폭 감소할 전망이나, 무역 불균형 해소로 양국 간 교역 관계는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해 베트남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훔쳐” 간다며 양국 간 무역 불균형에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이 계약 체결 직후 중국 관영 언론 글로벌 타임스는 놀랄 만큼 유화적인 논조의 논평을 내놓았다. 신문은 “보잉과 베트남 간 계약은 한 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며 “세계는 산업 체인을 형성하고 있고 중국이 글로벌 밸류체인의 상위 단계로 이동하려 함에 따라 일부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체들이 생산기지를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에서 거둔 경제적 성과에 질투할 이유가 없다”며 “반대로 우리는 미국이 동남아시아 기업과의 경제적 상호작용을 늘리기를 희망한다. 모두가 경제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점을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보도했다.

그로스만 연구원은 글로벌타임스의 논평이 모호하다고 평가하며 “중국은 세계를 영향력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고, 베트남은 분명 중국의 영향권에 있다. 중국은 이런 베트남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이는 제로섬 게임의 태도”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와 관련을 맺고 있는 싱크탱크 중국국제문제연구소(CIIS)의 연구원들은 언론을 통해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많은 나라와 동맹 관계를 유지하려는 베트남의 외교정책을 수용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지난해 미국 항모 중 베트남 전쟁 이후 처음으로 베트남 다낭에 정박한 후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는 CIIS의 텅젠췬 선임 연구원을 인용해 “중국, 러시아, 미국과의 균형 외교를 유지하려는 베트남의 전략에 부합”한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베트남의 경제적 관계 증진이 중국에도 이익이 된다는 견해도 있다. 글로벌 타임스는 3월 “중국산 제품을 겨냥한 미국의 관세 장벽을 피하기 위해 중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장려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푹 베트남 총리는 지난주 중국 베이징 방문 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중국과의 협력 및 우호 관계를 재확인하고 2차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했다.

하지만 중국은 베트남이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에서 베트남은 중국의 팽창주의에 저항하고 있다.

지난 2017년 8월 베트남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을 설득해 중국의 남중국해 해상 군사기지 건설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려 하자 차이나 데일리는 베트남이 아세안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은 몇 차례 베트남을 위협하기 위한 무력시위에 나선 바 있다. 지난해 베트남 정유사 페트로베트남과 제휴사인 스페인 에너지기업 렙솔(Repsol)은 2억 달러가 이미 투자된 남중국해 석유 시추 사업을 중단했다. 페트로베트남이 석유 시추 사업에 나선 지역은 중국이 남중국해 90%가량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설정한 이른바 ‘남해 9단선‘ 인근에 있다. 중국은 이 유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40척의 선박을 이 지역으로 보내 시추작업을 중단시켰다.

지난 2017년에도 중국의 군사적 무력시위를 통해 베트남 해상에서 렙솔의 시추작업을 중단시킨 바 있다.

South China Sea-Map-Benham Rise-Map-2017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빌 헤이튼 아태지역 담당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00년대에도 브리트시 페트롤리엄과 셰브런이 베트남 유전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협박했고, 2012년에는 자국 선박을 동원해 베트남의 해저 케이블을 절단하기도 했다.

이런 중국의 위협에 대한 베트남의 굴복은 중국 정책 당국자들에게 중국의 적대적인 조치에 베트남이 물리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줬을 가능성이 있다.

헤이튼 연구원은 “베트남이 싸움에 나섰다면 중국 선박 몇 척을 침몰시킬 수 있었으나 이런 대응의 군사적, 경제적 결과가 위중했을 것”이라며 “(중국의 위협에 의한) 석유 시추 사업 중단은 베트남이 믿을만한 해상 분쟁 억제 수단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홍콩 링난대학의 중국안보 전문가 장부어휘 교수는 지난 2016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군은 절대 중국군과 경쟁할 수 없다”며 “미국이 베트남의 분쟁 억제력을 강화하도록 참여하는 게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위 (전략)”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 정부가 현재의 미국과 베트남의 느슨한 군사적 협력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최근 몇 년간 미군 관계자의 베트남 방문이 잦아졌고 베트남 정부에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미국은 2015년 이후 남중국해에서 정례적으로 ’항행의 자유‘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헤이튼 연구원은 “렙솔이 석유 시추에 나서기 며칠 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항공모함인 칼빈슨호가 다낭에 정박했으나, 칼빈슨호 방문으로도 베트남이 중국의 위협을 무심하게 넘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필립 G 소이어 미 제7함대 사령관이 2018년 3월5일 베트남 다낭에 정박한 항공모함 칼빈슨호 갑판에서 베트남군 장교의 환영 인사를 받고 있다. (사진: AFP)

 

랜드 연구소의 그로스만 연구원도 “베트남은 미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이 필리핀이나 한국, 일본, 태국, 호주 등과 맺고 있는 안보동맹에 속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양국 간) 방위와 해상 안보 관계가 깊어지고 있어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또 다시 위기가 발생한다면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 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에게 남중국해 지배력은 시진핑 주석의 리더쉽과 중국의 경제적 리더쉽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1조 달러 규모의 일대일로 사업의 한 축이자 중국의 상품을 남중국해를 통해 인도양과 지중해로 운송하는 해상 교역로 확보를 위한 사업이다.

중국의 싱크탱크 차하얼학회의 웽펑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남중국해는 일대일로의 중요한 통로”라며 “남중국해의 평화는 일대일로 사업의 진전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비판론자들은 이에 대해 남중국해의 평화는 중국의 지배를 뜻한다고 반박한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남중국해에 대한 미국의 관심과 베트남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미국과 중국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베이징대학의 싱크탱크 SCSSSPI(South China Sea Strategic Situation Probing Initiative)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군은 계속해서 남중국해에서의 군사 작전을 강화할 것”이라며 “평화와 분쟁 사이의 회색지대를 계속 탐색하면서 중국이 소규모 무력충돌이나 전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임계점을 찾으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군 관계자들도 공격적인 발언을 피하지 않는다. 중국 국방부 산하 안보협력센터의 저우보 대령은 “우리의 능력이 향상되고 있어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많은 조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당사국들과 해상에서 원유나 천연가스 생산 등을 위한 공동개발협정 체결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은 지난해 중국의 이런 제안에 동의했으나, 베트남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베트남은 아세안을 움직여 중국의 팽창주의에 대한 엄중한 대응조치를 취하거나 중국이 아세안과 분쟁 해역에 대한 윤리강령(Code of Conduct)에 합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에 대해 약자로 보이거나 지나치게 적대적으로 보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적의 수를 줄이고 우군의 수를 늘리려는 베트남의 외교 전략이 남중국해 분쟁을 계기로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베트남이 이런 외교 전략을 사용하면서 느슨한 협력관계를 확장할 수 있지만, 유사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우방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다.

베트남이 미국의 보호를 생각한다면 미국이 남중국해 일부 섬에 대한 베트남의 영유권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중국과의 전쟁까지 감내하지 않을 것이라는 위험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에 베트남이 사회주의 체제의 유지와 교역을 위해 미국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을 피하고,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한다면 조공질서와 같이 과거 중국과의 관계에서 치러야 했던 대가를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