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000억 달러 규모의 대중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한 가운데, 지난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11차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이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협상 재개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으나, 중국이 미국의 산업 정책 수정법제화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워 협상이 빠른 시일 내에 타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최근 고조되고 있는 이란과 북한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이 맞물려 전 세계 금융시장 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타결 기대감이 컸던 미중 무역분쟁이 다시 격화된 것은 중국이 지식재산권 보호와 기술 탈취, 기술이전 강요, 자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 마련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기 때문이라고 미국 언론은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트윗을 통해 중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중국이 합의를 파기하고 다시 협상하려 했다”고 말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도 미국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종전 합의 사항의 일부를 파기해 최종 합의가 무산됐다며 “합의사항을 중국의 입법화로 명문화하는 게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주 9일과 10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 도중 대중 수입품 2000억 달러에 대한 관세 인상을 단행했다. 인상된 관세율은 10일부터 선적되는 상품부터 적용된다. 중국은 보복 조치를 언급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미중 양국이 파국은 피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대목이다.

커들로 위원장도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도쿄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만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미중 무역협상의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중국 정부가 라이트 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스트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베이징으로 초청했다고 밝혔다.

 

조기 타결 어려워

미국의 강경 대응에 중국이 맞대응을 자제하는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커들로 위원장이 밝힌 것처럼 미중 정상의 회동 가능성 등도 협상 재개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하지만 단기간 내 협상이 타결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기획재정부 등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이 2000억 달러 규모의 대중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신규 선적 물량부터 적용하기로 한 것은 중국에 약 4주 정도의 추가 협상을 위한 시간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국제금융센터는 12일자 보고서에서 “추가협상 가능성은 있지만 단기간 내 최종타결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며 “협상 시한이 연장됐다고 해도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법률 개정, 보조금 중단 등 산업정책의 변화는 중국이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종타결을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밝혔다.

국금센터는 또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략 차원에서 무역 이슈를 내년 선거 전까지 제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이행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며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확고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도 전면적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여론 확대를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위기감을 조장할 우려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도 “중국은 산업정책 변화를 시행령이나 행정명령으로 이행하겠다는 입장이나, 미국은 쉽게 바꿀 수 있는 시행령이나 행정명령이 아닌 법 개정을 통해 명문화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협상 타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며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요구로 법을 바꾸는 게 주권 침해로 보일 수 있어 수용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대선 국면까지 무역 분쟁 이슈를 끌고 가는 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며 “이래저래 협상이 이른 시일 내에 타결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최근 워싱턴 포스트지 기고를 통해 미중협상이 타결돼도 앞으로 지속될 미중 경제 전쟁의 일시적 휴전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간의 대결 구도가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3250억 달러 관세 부과 실현 가능성 미지수…중국 대응 신중

미국은 주로 중간재와 자본재로 구성된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한 데 이어 나머지 소비재 위주의 325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도 2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금센터는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시행을 준비할 것으로 보이나, 관련 법 절차에 따른 공청회 등의 일정을 감안할 때 2-3개월은 소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국금센터에 따르면 골드만 삭스 등은 2~3개월은 미중 무역협상 타결에 충분한 시간이 될 수 있다며 추가 관세 부과가 발효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골드만 삭스는 소비재에 대한 관세 부과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정치적 부작용도 우려되기 때문에 실제 이행 가능성은 25%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관세 인상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이 검토할 만한 조치는 농산물 관세 인상이나 비관세 장벽 등이 꼽히고 있다.

국금센터는 중국이 방미 협상단 귀국 후 조율을 거쳐 관세율 인상에 대한 대응 조치를 검토할 것으로 보이나 “현재까지의 분위기는 신중”하다고 밝혔다.

중국이 취할 수 있는 대응 조치에 대해 국금센터는 “우선 농산물 등 미국 내 정치적 논란을 확대시킬 수 있는 분야의 관세 인상을 검토할 것으로 보이나 비관세 조치도 검토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비관세 조치는 수입 쿼터 설정이나 시장진입규제 강화, 세관 절차 강화, 위안화 절하,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이 꼽히고 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도나 미국 상품 보이콧, 중국 내 미국 기업 활동 규제 등 강도 높은 보복 조치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국금센터는 전망했다.

금융시장 불안 지속 우려

연초부터 미중 무역협상 타결을 기대하며 비교적 순항했던 금융시장은 예상과 달리 무역협상이 난항을 겪게 되자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국금센터는 “연초 이후 선반영 된 미중 무역협상 타결 기대감에 대한 조정이 마무리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향후 불확실성 지속도 예상되기 때문에 당분간 이벤트와 뉴스에 따라 금융시장 발작이 수시로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과 북한 등의 지정학적 위험요인과 취약 신흥국 불안 등과 맞물릴 경우에는 국제 금융시장은 물론 한국 금융시장 불안도 심화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은 13일 거시경제금융회의 모두 발언에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추가관세 부과로 미중 무역갈등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요인으로 재부상”했다며 “향후 미·중간 무역협상의 전개상황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상존”하며 “국내금융시장도 이에 따라 일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금센터는 미중 무역분쟁이 이어지면 한국 등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 위축 등으로 아시아 경제 전반의 성장세가 약화될 것이라며 위안화와 원화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국금센터는 미중 무역협상이 교착상태로 접어든 가운데 미국이 자동차 관세까지 부과할 경우 세계 경제에 미칠 단기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나 중장기적으로는 세계 경제의 공급망 교란과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기업 투자심리와 소비심리 악화, 금융여건 악호 등으로 세계 경제의 하강 위험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금센터는 다만 “종전에 비해 자동차 관세부과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나 의회내 반대여론 등 감안시 단기간내 시행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정부는 400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액과 순대외채권 지위 등 한국의 양호한 대외 건전성이 금융시장 발작을 억제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국내금융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경우 외환시장 개입이나 외화유동성 공급 등을 통해 신속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또 수출이 하반기로 갈수록 반도체 수요 회복 등에 힘입어 점차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나, 미중 통상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수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따라서 무역금융 확대, 수출경쟁력 강화 등 수출활력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한편 해외 시장 다변화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