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주목받지 않았던 남태평양 도서국들이 이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여러 나라의 전략적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주 열린 싱가포르 국제전략연구소(Singpore’s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의 연례 지역안보회의에서 이런 움직임이 뚜렷하게 부각됐다. 18년간 이어진 이 회의에서 처음으로 남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략적 경쟁에 대한 논의가 한 세션을 차지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의 움직임이다. 중국은 분명한 경제와 외교, 안보 목표를 갖고 이 지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이 지역이 국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방어에 나서고 있고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는 물론 인도까지 국익을 위해 이 지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남태평양이 전략적 경쟁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태평양전쟁에서 이 지역은 연합군과 일본군과의 격전지였다.

이 지역 16개 도서국에 사는 320만 명의 주민은 이처럼 외부의 주목을 받는 것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 지역 16개 섬나라는 쿡 아일랜드와 피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키리바티, 마셜군도, 미크로네시아, 나우루, 뉴칼레도니아, 팔라우, 사모아, 솔로몬군도, 통가, 투발루, 바누아투 등이다. 범위를 넓히면 호주와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도 이 지역 국가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된 퍼시픽 아일랜드 포럼(pacific Island Forum)의 회원국이다.

여러 나라의 이 지역에 관심을 보이면서 발생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 지역 국가들이 원하는 경제 발전 가능성이다.

반면에 불필요한 개발 사업으로 국가 부채가 늘어나고 이미 지구 온난화의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 이 지역의 환경 파괴가 가속화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중국과 다른 나라가 경쟁을 벌이면서 이 지역 국가들의 협상력이 확대될 수도 있으나, 협상력 제고가 이 지역의 발전보다 부패한 정치인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중국, 호주가 해군 기지 건설 등을 통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남태평양

중국의 4개 목표

리스크 분석 기업인 영국의 옥스퍼드 애널리티카(Oxford Analytica)는 중국은 4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 지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 목표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 지역까지 국가 안보의 경계선을 확장해 중국과 경쟁국들 사이에 완충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만과의 외교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대만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나, 중국과는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17개국 중 6개국이 이 지역에 몰려있다. 솔로몬제도와 팔라우, 나우루, 키리바티, 마셜군도다.

세 번째 목표는 남태평양과 이 지역 도서국들의 천연자원 채굴권 확보다. 중국은 이미 이 지역 대부분 나라의 최대 교역상대국이고, 이 지역에 약 300억 달러를 투자했다.

네 번째는 이 지역을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프라 건설 사업을 따내고 특히 교역과 해군 파견을 위한 항만시설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지역은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등의 보호 아래 여러 개의 영향권으로 나누어졌다. 호주는 이 지역의 가장 큰 공여국이고 미국은 팔라우와 마셜군도, 미크로네시아연방 공화국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공격적인 원조와 함께 이 지역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대만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의 관심을 끌기 위한 조치였다. 나우루는 2002년 중국의 대규모 지원 프로그램을 약속하자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끊고 중국 편에 섰으나,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2005년 다시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대만과 수교했다.

대만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이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영향력이 큰 솔로몬제도다.

하지만 지난 4월 열린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네 번째 권좌로 복귀한 마나세 소가바레 총리는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중국과 수교하는 것 중 어느 쪽이 국익을 위해 최선인지 재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변국들도 같은 고민에 빠져있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솔로몬군도 수출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수출품은 목재로 중국에 대한 목재 수출이 솔로몬군도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주와 미국은 솔로몬군도가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게 될 경우 지역 안보 위협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소가바레 총리는 지난 2017년 솔로몬군도와 호주 시드니를 연결하는 광케이블 매립 공사 사업자로 화웨이를 선정하면서 뇌물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인정하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호주는 미국과 함께 자국의 통신망에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호주와 남태평양 지역 국가들은 소가바레 총리가 중국과의 수교에 나서면 대만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머지 5개국도 중국과의 수교에 나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파푸아뉴기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영하는 파푸아뉴기니 국민 (사진: AFP)

 

바누아투에 중국 해군 기지 건설?

주변국의 안보에 대한 우려를 불러올 만한 다른 소식도 있다. 지난 4월 호주 언론은 중국이 바나투아와 해군 기지 건설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나투아는 호주에서 1500km 떨어진 남태평양의 심장부에 있다.

바나투아에 중국의 해군 기지가 건설된다면 인도양과 태평양 지역에 대한 중국 해군의 영향력을 확충할 수 있다. 반면에 미국과 동맹국에는 중국 해군의 자유로운 항해를 봉쇄하는 방어선 붕괴를 의미한다.

중국이 인도양에 접해 있는 북아프리카 지부티와 남중국해에 7개의 군사 시설을 건설한 후 남태평양에도 군사기지를 확보하는 것은 미국과 동맹국에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의 해상 방어선인 이른바 첫 번째 아일랜드 체인(First Island Chain)은 북쪽의 일본 쿠릴 열도에서 일본과 대만, 필리핀, 동남아시아를 거쳐 싱가포르와 말라카해협까지 이어진다.

두 번째 아일랜드 체인은 태평양 지역의 일본 오가사와라와 이오 열도 미국령인 마리아나 제도를 거쳐 동인도네시아로 연결된 방어선이다. 마리아나제도에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괌 미군 기지가 있다.

세 번째 아일랜드 체인은 알래스카의 알류샨 열도에서 하와이 거쳐 남태평양의 섬으로 이어진다.

중국이 바누아투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아일랜드 체인이 무너지는 셈이다.

중국과 바나투아는 모두 중국 해군 기지 건설 보도를 부인했으나, 줄리 비숍 호주 재무장관은 바나투아는 중국의 “타고난 전략적 파트너”라며 관련 보도를 뒷받침했다. 이 보도의 사실 관계를 입증할 정보가 충분해 보이는 가운데 바나투아 해군 건설 기지 건설 계획이 언론을 통해 드러남에 따라 건설이 연기됐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호주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양국은 파푸아뉴기니 북부에 있는 마누스섬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미국과 호주는 바나투아 해군 기지 건설 문제 외에도 중국이 파푸아뉴기니와 웨와크 등의 항만시설뿐 아니라 마누스섬에 있는 롬브룸 해군 기지를 재건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누스섬 해군 기지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과 영향력 확대를 위한 경쟁이 극동과 동남아시아, 북인도양에 이어 남태평양까지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