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과 무역전쟁, 유가 상승에 시달리는 세계에서 동남아시아가 피난처로 부상하고 있다.

이 지역 국가가 성장을 위해 수출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폭탄을 퍼부었을 때 동남아 경제는 놀랄 만큼 활력이 넘쳤다. 일각에서는 동남아를 심지어 안전지대를 뜻하는 “세이프 헤븐”으로 부르기도 한다.

IHS 마르키트가 집계하는 JP모건의 글로벌 PMI 지수는 4월 52.1에서 5월 51.2로 하락했다. 경기 상승과 하강을 가늠하는 기준선인 50선은 넘겼지만,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세안은 사정이 다르다, 동남아 7개국 중 5개국 경제는 여건이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의 PMI 지수는 5월 51.6을 기록,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태국은 소비심리가 다소 위축됐으나, 수출 주문과 내수가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냈다. 필리핀 PMI 지수는 51.2로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요 증가

베트남은 고객 수요가 늘어나면서 PMI 지수가 52를 나타냈고 싱가포르도 52.1을 기록했다. 말레이시아 PMI 지수는 50선에 미치지 못하는 48.8을 기록했으나, 연초보다 큰 폭으로 개선됐다. 최근 이 지역 PMI 지수는 향후 경기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동남아의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최근 열린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태국의 선거 결과로 개혁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집권 2기를 맞아 구조개혁을 가속화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집권 1기 5년간 위도도 대통령은 인프라 개선에 우선순위를 두고 정부 보조금 축소, 정부 조직에 대한 신뢰와 투명성 제고 등 굵직한 개혁 조치를 추진했다. 그의 세금 사면 조치는 기업인들이 해외에 은닉한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기여했다. 위도도 대통령은 재집권을 통해 그의 개혁 조치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기회를 잡았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마하티르 모하메드 정권의 출범 후 13개월의 행보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이 가속화하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올해들어 3월까지 전년동기대비 95% 급증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정부 부채를 지속해서 줄이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울 것이라는 투자자의 신뢰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인도는 물론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최근 몇 주간 잇따라 금리 인상이 단행됐다. 2018년 6차례 금리를 인상했던 인도네시아 중앙은행도 완화적 통화정책으로의 전환을 시사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로의 전환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 때문에 중앙은행의 완화적인 조치가 필요하지만 지난 2013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섰을 때 인도네시아는 큰 교훈을 얻었다. 당시 모건 스탠리는 브라질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와 함께 인도네시아를 5대 취약국가로 지목했다. 기준금리를 너무 많이 내리면 인도네시아 루피아화가 2013년과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몇주 후에 열리는 통화정책 결정 회의에서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 지난달 필리핀 중앙은행은 2016년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4.5%로 낮췄다. 금리 인하에도 인플레이션이 높지 않아 추가적인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남아 있다.

자기만족에 빠질 상황은 아니지만, 동남아는 미중 무역전쟁이 최악으로 전개돼도 상황을 헤쳐나갈 여력이 있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위기의 영역으로 몰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동남아 각국의 정부와 중앙은행은 최악의 국면에서 경제를 방어하기 위해 신속한 의사 결정에 나서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에 대한 취약성을 높여주는 경제의 불균형과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총리 등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포퓰리스트적인 성향을 억제해야 한다.

동남아는 과감한 개혁 추진 등 모든 면에서 이 지역 발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회의론자들을 당황하게 만들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