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지난 2017년 7월과 2018년 3월 남중국해 분쟁지역에서 석유탐사를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는 중국의 위협에 직면하자 탐사를 중단했다.

베트남은 지난해에도 중국의 압력으로 스페인의 거대 에너지 기업인 렙솔이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서 추진하던 2억 달러 규모의 석유와 가스 유전 개발 프로젝트를 폐기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지난달 남동부 배타적 경제수역에 있는 뱅가드 뱅크에 중국 석유탐사선 ‘하이양 디즈 8호’와 중국 해안 경비정이 진입했을 때 베트남 해안 경비정은 물러서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베트남은 과거 양측이 분쟁지역에서의 해상 충돌을 막기 위해 비선 라인을 활용해 협상에 나섰던 것과 달리 공개적으로 대응했다. 베트남 외교부는 중국 관련 기관에 공식 항의하고 국제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레티투항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이 “베트남의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을 침범했다”고 밝혔다. 베트남 외교부는 즉각 “중국은 베트남 해역에서 모든 중국 탐사선과 호위 선박을 철수“하라고 촉구하며 인근 해역에서 러시아와의 공동 탐사를 9월까지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분쟁은 지난 5월 베트남이 러시아와 베트남 합작기업인 ‘로즈네프트 베트남 BV’와 계약한 일본 석유탐사 업체의 뱅가드 뱅크 인근 대륙붕 석유탐사를 인가한 후 시작됐다.

중국 정부는 이 지역이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해 9단선’ 내에 있다고 주장한다. 남해 9단선은 중국이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자의적으로 설정한 9개의 해상 경계선이다. 중국은 남해 9단선을 근거로 남중국해의 90%에 해당하는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의 석유탐사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은 하이양 디지 8호와 중무장한 해안 경비정, 민병대 어선 등을 이 지역으로 보냈다.

베트남 전문가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명예교수 칼 테이어는 “베트남 해안 경비정은 고출력 물대포 공격에 노출됐다”며 “베트남 외교부의 배경 브리핑에 따르면 대치상황 중에 중국 선박의 수가 한때 최대 35척까지 늘어났다. 8월 3일 한 베트남 소식통은 나에게 이번에 동원된 모든 종류의 중국 선박을 합하면 80여 척에 달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뱅가드 뱅크다. 이미지: 위키미디어 커먼즈

외교 분석가들은 베트남과 종전과 달리 중국과 대치하기로 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양국 선박이 대치한 현장은 베트남에 더 가깝고 중국 선박이 베트남 영해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석유탐사가 지난해 중국의 위협으로 탐사를 접은 지역보다 뱅가드 뱅크에서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단호한 대응의 배경이 될 수 있다. 베트남 정부는 또 2017년과 2018년 발생한 충돌에서 베트남이 물러서면서 중국의 공격성을 더욱 키웠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다른 이유는 베트남이 2018년 당시보다 미국을 비롯한 강력한 힘을 지닌 우방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베트남이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표방하며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으나, 미국은 베트남과 더욱 긴밀한 군사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베트남과 중국 간 해상 충돌이 발생했을 때 침묵했으나,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베트남을 지지하고 나섰다.

베트남은 또 이번 주 동남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유럽연합과 새로운 방위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 베트남은 프랑스와 안보협력을 위한 공동위원회를 설립했다. 공동위원회 설립 몇 달 후 싱가포르에서 샹그릴라 대화에서 피렌체 팔리 프랑스 국방장관은 ”남중국해에서 1년에 두 번 이상 항해를 하는 한편, 안정적이고 대립적이지 않지만, 완고한 방식으로 국제법을 계속 준수하겠다“고 말했다.

샹그릴라 대화는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국가들이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연례 아시아안보회의다.

최근 러시아도 베트남지지 가능성을 시사했다. 러시아는 베트남과 함께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에서 석유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는 베트남의 최대 무기 수입국이지만 남중국해 분쟁 개입을 꺼려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가 중국의 남해 9단선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한 후 “중국의 입장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베넷 머레이 DPA 통신 하노이 지국장은 최근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베트남의 입장에서 석유산업을 강대국 정치와 연계시키는 것이 남해 9단선 내 일부 석유 시추사업을 지속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썼다.

지난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중국은 강압적인 수단을 통해 남중국해 개발을 차단함으로써 아세안 2조5000억 달러 이상의 에너지원에 대한 아세안 회원국의 개발을 막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뱅가드 뱅크에 설치된 베트남의 석유 시추 시설 (Source: CSIS/ATMI)

하지만 베트남이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왕이(王 Minister) 중국 외교부장은 방콕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의에서 중국과 아세안의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수칙(Code of Conduct) 협상에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2021년까지 행동수칙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압력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는 필리핀이 2021년까지 이 협상을 조율하는 책임을 맡고 있어 중국은 2021년까지 협상이 타결되기를 원할 것이다.

필리핀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집권한 2016년부터 중국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자제해 왔다.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장관은 최근 중국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며 “중국은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고 국제법을 따른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달 전쟁을 피하기 위해 중국이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필리핀 서해를 “통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중국해에서 중국 군사시설에 “7분 안에 마닐라에 도달할 수 있는 유도 미사일”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기대와 달리 태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아세안과 중국의 남중국해 행동수칙 합의 과정이 더 길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분석가들은 태국이 의장국을 맡은 올해 이 행동수칙 제정에 대한 책임과 중국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을 피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태국이 베트남이 의장국을 맡는 내년까지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늦추려 한다는 얘기다.

중국은 행동수칙 제정이 분쟁에 대한 다자간 해결방안을 찾는 것뿐 아니라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 외교정책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왕이 외교부장은 미국의 분쟁 개입에 대해 “비지역 국가들이 의도적으로 견해차나 분쟁을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비지역 국가들이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 불신을 뿌리기 위해 분쟁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중국이 반대편에 서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베트남은 미국과 EU, 일본이 이 지역에서 점차 분명하게 “국제적이고 법에 근거한 질서”를 옹호하는 것에 기대 남중국해 분쟁의 국제화를 추진해 왔다.

다만 베트남도 중국처럼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베트남의 반중 민족주의가 사회주의의 공고한 연대를 주장하는 공산당의 목소리에 묻힐 때도 있다. 무엇보다 중국과의 교역이 없다면 현재의 경제 성장을 구가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있다.

Chinese President Xi Jinping (C) and Vietnam's Communist Party Secretary General Nguyen Phu Trong (R) wave during a welcoming ceremony at the presidential palace in Hanoi on November 12, 2017. / AFP PHOTO / POOL / HOANG DINH Nam
2017년 11월12일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시진핑 국가 주석이 응웬 푸 쫑 베트남 주석과 나란히 걷고 있다. (사진: AFP)

하지만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반중 정서가 만연한 베트남에서 정부가 중국의 괴뢰 정권이라고 불리면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베트남의 반중 감정은 지난해 절정에 달했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최대 99년간의 토지 임대를 허용하는 법 개정 추진에 반대하는 대규모 전역에서 발생했다. 이 법이 중국 기업에 베트남의 주권을 파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힌 베트남 정부는 이 법안을 결국 폐기했다.

올해 초 다수의 공산당원이 수뇌부에 중국의 투자를 제한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테이어 교수는 “반중 정서는 이미 (베트남 공산당) 내에서 최고조에 달해 있다”며 “현재 진행 중인 뱅가드 뱅크에서의 대립은 이런 정서를 강화할 뿐”이라고 말했다.